중국 야시장을 다니다 보면 저 멀리서부터 코를 확 사로잡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사랑받는 취두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냄새의 길거리 음식”이라 불릴 만큼 독특한 향을 뿜어내죠. 이 강력한 향을 만드는 주범은 다름 아닌 황화수소라는 황화합물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노랗게 빛나는 결정 상태의 황은 사실 아무 냄새도 없다는 것이죠.
“순수 황은 무취인데, 황을 품은 가스는 왜 이렇게 냄새가 셀까?”
이 작은 궁금증이 오늘 여행의 출발점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황의 진짜 모습을 찾아 떠나 볼까요?
원자번호 16번 황(S)의 기본 정보입니다.
황의 가장 큰 묘미는 온도에 따라 성격이 확 바뀐다는 점입니다. 실온에서는 레몬사탕처럼 노랗고 단단하지만, 115 ℃만 넘기면 마치 용암처럼 붉은 액체로 흐르기 시작하고, 444 ℃ 이상에서는 하늘색 불꽃을 뿜으며 타오르죠.
비밀은 분자 구조 변화 - 고리가 풀려 길쭉한 사슬로 바뀌는 순간, 빛을 흡수·방출하는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 황 연기로 궁전을 살균하다
기원전 8세기.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귀환 직후 궁궐을 훈증합니다. 그가 쓴 방역제가 바로 황을 태운 연기였습니다. 황이 불에 타면 SO₂ 기체가 나오는데, 이 기체가 세균과 곰팡이를 싹 잡아주는 덕분에 고대인도 위생을 챙길 수 있었던 셈입니다.
동양 의학의 ‘황연고’ 비밀
중국 진·한 시대에도 황은 종기, 진드기, 물건 방부에 널리 쓰였습니다. 오늘날 피부과에서 만나는 황 5 % 연고의 뿌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노란 가루가 상처를 덮으면 염증균이 번식하기 힘들어지거든요.
연금술이 꿈꾸다 놓친 금, 대신 얻은 화약
중세 연금술사는 ‘황(불)과 수은(물)을 결합해 금을 만든다’는 미신을 좇았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우연히 황 + 숯 + 초석 배합으로 블랙파우더(흑색 화약)를 얻어 전쟁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죠. 실패 속에서 세상을 바꾼 셈입니다.
라부아지에의 쇼-“내가 원소라고!”
18세기말,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황 덩이를 가열·무게를 재는 간단한 실험으로 “황은 더 이상 연금술의 짬뽕이 아니다, 독립된 원소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한마디는 황을 산소·수소와 함께 근대 화학 3대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순수 황은 냄새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황하면 왜 악취가 높은 악명이 따라붙을까요? 범인은 황화수소와 유기 황 화합물입니다.
온천이 달걀 냄새를 풍기는 이유도 지하에서 올라온 H₂S 때문이고, 취두부·두리안·방귀·입 냄새의 주범 역시 황화합물입니다.
다시 말해 “코를 괴롭히는 건 황이 아니라 황이 달라붙은 세균과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사실 그게 그거긴 합니다만 순수 황입장에서 보면 억울할만합니다 ㅎㅎ)
카와이젠 분화구, 새벽의 블루 파이어
자바섬 카와이젠은 세계 유일의 ‘파란 불꽃 화산’으로 불립니다. 밤이면 1,000 ℃가 넘는 황화 가스가 공기와 만나 푸른 불길을 일으키죠. 이 장관을 만드는 또 다른 주인공은 인부들입니다. 간이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90 kg짜리 황 덩어리를 어깨에 지고 8km를 나르면서도, 그들은 오히려 “황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말합니다.
현장 다큐멘터리는 이 광경을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기록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황은 무척 다양한 곳에서 쓰입니다.
타이어의 탄력 고무에 황을 살짝 섞어 ‘가황’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자동차 타이어가 ‘통통’ 튀듯 더 단단해집니다. 비료의 변신 식물도 영양제 필요! 황으로 만든 비료를 주면 곡물이 튼튼해진답니다. 샴푸·연고 비듬 샴푸나 피부 연고에 ‘Sulfide’ ‘Sulfur’란 글자가 있다면 “아! 황이 들어 있구나” 하고 반가워해 보세요. 전기차 배터리 과학자들은 리튬-황 전지라는 새 배터리를 연구 중이에요. 완성되면 스마트폰도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대요! 유황오리 길을 가다보면 “유황오리” 전문점이 있습니다. 오리에게 아주 소량의 황 가루를 사료에 섞어 주면, 오리 몸속 노폐물이 빠져나가 잡냄새가 줄고 고기가 담백해진다고 하죠. 덕분에 유황오리는 ‘보양식’ 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이렇듯 황은 ‘산업력의 체중계’라 불립니다. 비료·세제·플라스틱·배터리 등 안 쓰이는 곳이 없죠. 황산 생산량을 보면 국가 공업력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19세기 말, 경제학자 윌리엄 앨런은 “1인당 황산 소비량이 국민생활 수준을 반영한다”라 정의했습니다. 비료로 농업 생산을 살리고, 가황 고무로 교통과 기계화의 기반을 마련한 덕분이죠. 오늘날에도 국제 통계에서 황산 생산량은 GDP·철강 생산량과 함께 산업화 지표로 활용됩니다. |
썩은 달걀 냄새 뒤에 숨어 있던 노란 결정은,
화산 광부의 푸른 불꽃이 되고,
타이어의 탄성을 살리고,
전기차 배터리의 미래를 밝히고,
맛있는 보양식으로 허기진 우리의 몸까지 책임집니다.
다음에 온천에서 코를 찡긋할 때, 맛있는 유황오리를 먹었을 때 이렇게 속삭여 보세요.
“오, 저건 황의 또 다른 페르소나야!”
다음에는 어떤 원소가 여러분 일상 속에서 숨어 있다가 깜짝 등장할지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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